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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교회(Marienkirche (Marienhafe)) 오르간

  마리엔하페(Marienhafe, 독일 니더작센주 Ostfriesland 지방의 읍 단위의 마을))에 있는 루터교의 Marien교회는 1829년 교회의 일부분을 해체하기까지 Ostfriesland지방의 가장 크고 의미 있는 종교건축물이었다. 이 교회는 13세기 약 500여명의 주민이 사는 Marienhafen 마을에 초기고딕양식으로 건축되었으며 당시 Osnabrücker Dom의 크기에 도달했으며 Groningen(네달란드의 지방)과 Bremen(독일 북부의 광역도시)시 사이에서 가장 큰 교회로 여겨졌다.

  오랫동안 이 교회는 의미 있는 항로표지였다. 레이만(Leybucht, Ostfriesland에 있는 두 번째로 큰 만(灣))은 이 교회건물까지 직접 도달하였다. 이후 교회는 수로를 넘어 북해(Nordsee)와 연결하였다. 종교개혁 후 1593년 Marienhafe에서 루터교의 동부지역과 개혁적인 서부지역의 분리된 Ostfriesland의 관할구역을 공통의 교회규율을 세우는 것이 시도되었다. 이 규율은 결정되었지만 결코 실현되지 않았다. 17세기와 18세기에 교회는 점차 쇠퇴하여 1829년 교회의 상당부분이 철거되었다. 추가 개축공사에서 오늘날의 교회형태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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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n교회의 오르간은 1710-1713년 Gehard von Holy에 의해 제작되었고 Ostfriesland에서 가장 상태가 좋고 온전하게 유지된 바로크오르간이다. 이 오르간은 손 건반 2단에 20개의 음색을 갖고 있으며 Pedal은 pull-down 액션으로 연결되어있다.

 

오르간의 제작역사

15-17세기의 초창기 오르간들

  1437년 오르간제작 마이스터 Thidricus de Dominis에 의해 합창석 북쪽장소에 Ostfriesland의 첫 번째 오르간들 중 하나인 오르간이 제작되었다. 이 오르간의 잔해들은 18세기까지 보존되었다. 이 소형 합창오르간 옆에 대형의 주 오르간이 이미 존재했었다.

 

1713년 Holy를 통한 새 오르간제작

  교회교구는 1710년 11월 22일 새 오르간제작을 결정하였다. 오르간제작자 Holy와 1711년 오순절에 오르간의 완성을 550 굴덴(Gulden)에 계약하였다. 1710-1713년 그 전까지 있던 오르간에 현재의 오르간을 제작하였다. 이 오르간의 완성은 재정문제와 그로인한 논쟁으로 연기되었다.

 

  1712년 6월 마침내 Esens로부터 오르간구조물이 인도되었다. 오르간제작자 Holy는 합창석과 방형의 사이 후면 칸막이(rood screen, Lettner)오르간자리에 구조물을 설치하였다. Holy는 교회교구로부터 오르간제작에 필요한 자재의 구입을 위한 연이은 오르간제작대금을 요구하였다. 대금을 받지 못하면 철수하여 오르간의 완성을 할 수 없다는 그의 협박은 교구로 하여금 그를 소송하려는 욕구를 야기 시켰다. Holy는 20 Gulden의 벌금을 선고받았고 오르간은 1712년 성탄절까지 인도해야만 했다. 오르간의 봉헌식은 1713년 10월 11일 거행되었다. 오르간은 Rückpositiv와 오르간난간에 눈에 뜨이게 장식품이 많았고 이를 Egbert Harmens가 완성하였다. 오르간의 소리는 Holy가 같은 시기(1710-1711) Dornum에 제작한 자매오르간과 완전히 비슷하다. Marienhafe의 오르간에서 프로스펙트의 Principal과 모든 배음음색들 그리고 Mixturen는 원래의 것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원래의 보이싱(voicing, Intonation)도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이 가치 있는 악기는 제작 상 그리고 소리의 관점에서 Schnitger의 제자들의 제작전통에 따라 세워졌기 때문에 이 악기는 Arp Schnitger의 작품을 위해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총주를 위한 수많은 가능한 음색조합은 이 오르간이 회중찬송의 반주를 위한 악기로 계획되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를 위해 바람공급대의 유연한 바람이 기여한다.

 

 

18세기 및 19세기 보수와 개조작업

  1761년 Johann Adam Berner는 개축작업을 하였다. Johann Friedrich Wenthin은 1781년과 1797년 이 악기를 수리하였다. 1819년 8월 21일 둥근 천장의 붕괴는 놀랍게도 오르간을 해치지 않았다. 1828년 Johann Gottfried Rohlfs는 이 오르간을 운반하여 탑에 적재하였다. 동쪽 반원형의 벽감(壁龕, 서양건축물에서 벽면을 오목하게 파서 만든 부분)이 계속해서 붕괴한 후 그리고 교회가 점점 작아진 후 1831년 Rolfs는 서쪽 합창석 난간에 다시 세웠다.

  19세기 로만틱풍 소리의 아름다움으로 전환할 때 교사이자 향토사학자인 Friedrich Sundermann은 1884년 오르간을 “제일의 큰소리 내는 자”로 표기하였다. Johann Diepenbrock는 1886년 Quintadena 16’를 Bordun 16’와 Trompete 8’로 대체하였다. 20세기 초 오르간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키고 대체하려는 계획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오르간제작사 Furtwaengler & Hammer는 1909년 여전히 사용가능한 음색들의 재사용하는 조건으로 새 오르간제작을 위한 제안서를 제출하였다.

 

  오르간복고운동은 이 악기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이 악기는 알려지지 않은 제작자가 제작한 오르간으로 Ostfriesland의 의미 있는 오르간기념물로 여겼다. 이 악기는 1952년 보호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66년 아렌드(Ahrend)와 브룬제마(Brunzema)에 의한 개축

  1966년 Ahrend와 Brunzema는 Rückpositiv를 먼저 그리고 1969년엔 Huptwerk를 수리하였으며 이를 통해 두 개의 잃어버린 음색을 재건해야 했다. 다른 모든 음색들은 온전히 보존되어있었다. 낡은 바람공급대(wind-chest)는 오리지날 규격에 의해 재건하였다. 프로스펙트 파이프들은 빛나는 주석박(箔)을 얻었다. 1988년 Jürgen Ahrend를 통하여 지금까지 평균율로 조율된 파이프들을 오르간 제작당시의 조율법으로 조율하였다. 더욱이 북독일 Arp Schnitger 오르간에서 증명된 모범적인 조율법, 민톤(meane temperament)조율법의 하나의 형태인 조율법으로 조율하였다. 1966년과 1969년 원했던 오르간케이스의 근본적인 수리를 2010년 Hendrik Ahrend를 통해 실행되었다.

 

  2010년 수리작업에서 프로스펙트의 큰 부분인 Haiptwerk의 푸른색의 아래 부분을 모래색(Sandfarben, 여린 붉은 흰색)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납의 부식을 통해 상한 파이프다리들을 새롭게 하였다. 옛 납 파이프들은 계속되는 부식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미 바람공급대의 공기순환장치를 장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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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인 제원

    *  II. Manuale/Pedal

    * Manualcoupler(push-pull coupler)

​   * 2개의 Zimbelstern

   * Pedal(pull-down action) : CDEFGA-d1

​   * 건반액션 : 기계식

   * 스톱액션 : 기계식

   * 바람압력 : 64 mm WS

   * 4개의 쐐기형 풀무

   * a1 =(대략 오늘날의 a#1)

   * 조율법 : Norder 조율법(mean-tone 조율법의 변형형태로 1/5 피타고라스콤마를 기본으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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