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페터와 바울교회(Görlitz (DE), evang.-luth. Bischofskirche St. Peter und Paul)
성 페터와 바울교회는 폴란드와의 접경지역인 나이세(Neisse)강 유역에 자리한다. 이 교회는 독일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도시교회(Stadtkirche)이며 동시에 가장 큰 교회이다. 14.4 m의 높이와 10.3 m의 넓이를 가진 오르간전면은 우선 거대한 초등신대의 천사들로 장식을 한 페달 탑과 그 탑 내의 총 7.82 m의 커다란 파이프로 오르간을 바라보는 관찰자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Goerlitz의 조각가 Johann Conrad Buechau가 제작한 이 유명한 오르간케이스는 독일 바로크와 이태리 르네상스 형태의 융화로 독일과 전 세계의 오르간전문가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 케이스안에 Casparini는 자신의 오르간을 제작하였다.
Suer오르간은 4개의 손 건반과 Pedal에 89음색을 배치하였다. 그러나 이 오르간은 결코 50년을 사용하지 못했다. 1980년부터 1992년까지 교회의 리모델링 공사의 시작직전인 1978년 거의 사용할 수 없게 된 바람공급대의 몇몇의 나무파이프를 완전히 제거하였다. 25년 전부터 태양오르간 제작에 대하여 논의 되었다. 이 교회의 음악감독인 Reinhard Seeliger는 오르간봉헌 시 축하기념 집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오르간의 첫 디자인부터 음색배치에 이르기까지 과정은 매우 길었다. 많은 질문들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유효했다. 새 오르간이 Casparini 오르간의 복제품이어야 되는가? 옛 오르간케이스에 전혀 새로운 오르간이 들어서야 하는가? 오르간의 크기는? 오르간은 어느 시대의 작품을 연주해야 하는가? ”
옛 역사적인 오르간에서 단지 태양과 천사의 형상을 한 케이스를 살리기로 하였다. 역사 고증가로부터 칭찬부터 혹독한 비판까지 받았다. Casparini의 유일한 오르간은 유지되지 않았다. 앞에 언급한 기술적인 언급은 태양오르간의 진정한 복제물을 실현 시킬 수 있다는 것이 가망 없어 보일만큼 모순된다. Casparini오르간의 소리 역시 오르간의 재건을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 실현할 수 없었다. Matthias Eisenberg에 의해 제안된 음색배치 초안은 여러 번 회의를 거쳐 오르간전문가들로부터 자문을 받았다. 이들은 KMD Dr. Christoph Albrecht, Berlin; Prof. Wolfgang Baumgratz, Bremen; Matthias Eisenberg, Keitum/Sylt; LKMD Rolf Lammert, Görlitz; Pfarrer Peter Lobers, Görlitz; Reinhard Seeliger, Görlitz; OKR Eberhard Völz, Görlitz이다“
새 오르간의 전설적인 산파역할을 할 제작자인 Eugenio Casparini는 남독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이태리에서 활동했기에 우리의 오르간을 위해 남독지방의 오르간제작회사들이 고려되었다. 약 20여개의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스위스의 회사들에게 추천악기를 부탁하였다. 1994년 5월 1일 교회 교직자회로부터 오르간제작의 주문을 스위스 Naefels에 있는 Mathis 오르간제작 주식회사에 위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95년 5월 12일 교회 교직자회는 태양오르간 제작의 첫 번째 공기를 위한 주문을 수여할 수 있었다.
새 오르간에 대한 요구는 매우 많았다. 페터교회의 500주년 기념일과 Casparini와 오르간제작 계약서를 작성한지 300년 되는 날에 예배 시 모든 전례의 오르간연주를 할 수 있고 가능한 한 모든 시대의 오르간작품을 연주할 수 있어야했다. 또한 커다란 교회 내부의 구석진 곳 까지 잘 울릴 수 있어야 했다. 이러한 모든 견해 아래 Casparini의 음색과 Sauer의 이용 가능한 나무파이프를 결합하는 새 음색배치를 고민하게 되었다. 오르간의 Werk를 Casparini에 의해 계획된 대로(중간에 Hauptwerk, 그 위에 Oberwerk, 연주대 위에 Brustwerk, 케이스의 양편에 크고 작은 Pedalwerk) 배치하는 것이 경제적일 수도 있었다.
Casparini오르간의 파이프들의 오리지날 재제작은 포기되어졌다. 왜냐하면 재제작을 위해 필요한 원래의 재료가 결코 충분하지 않을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원래의 음색배치를 일방적으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노출된 교회의 주 오르간에 음색을 오늘날 어떻게 배치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였다.
Weingarten 수도원교회에 있는 Gabler오르간의 “Vox humana같이 전설에 쌓여 있는 Casparini의 "Onda mais"는 오늘날 Oberwerk에 배치하였다. 이 음색은 실측백나무로 만들었으며 여전히 원래의 파이프들을 가지고 있다. 이 파이프들은 Prinzipal 8'와 쌍을 이뤄 마호적인 소리를 낸다.
연주자의 기쁨을 위해 당시의 정서에 맞는 옛 음색 이름으로 하였다. Sonne, Vogelgesang, Nachtigall, Kuckuck, Tamburo (Totentrommel)와 같은 연주도움음색은 바로크 윤무를 채운다.
Görlitzer Sonnenorgel은 Näfels의 공장에서 조립하여 1차 보이싱을 하였다. 마침내 수백 개의 부분들을 해체하여 가구운반 화물차로 Görlitz로 운반되었다. 페터교회에서 두 달간 역사적인 케이스 내에 작품이 접목되었다. 설치에 이어 약 14주 동안 회사의 대표이며 보이싱 기술자인 Hermann Mathis에 의해 예술적인 최종 보이싱작업을 하였다. 감명을 주는 전설적인 Casparini오르간의 케이스에 새로운 오르간을 접목하는 것과 그렇게 함으로 화려한 프로스펙트에 내적인 삶을 주도록 하는 작업은 Mathis 오르간 제작사의 전 직원에게 큰 도전이었다.
태양오르간의 기술적 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