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성 야코비 교회(St. Jacobi Kirche) 오르간

  성 야코비 교회(St. Jacobi Kirche)는 Hamburg의 루터개신교 주교회이다. 역사적으로 많은 변경과 2차 세계대전 당시 파손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는 시내 중심지에 있는 보존되어있는 중세시대 건축물의 교회이다. 이 교회는 헤이그 조약에 의해 보호받는 문화쟁이다.

 

위치

  St. Jakobi 주교회는 Hamburg 중심의 쉬타인가(Steinstrasse)에 위치한다. 이 거리는 초기 Hamburg의 주도로 중 하나였다. 오늘날 이 거리는 20세기 통상 센터(상사, 기업 등의 해외지점이 몰려있는 장소)로 각인되어있다.

Jaco 2.png
Jaco 1.png
jaco 5.png
Jaco 7.png

1592년 Specification

  1635-1636년 Gottfried Fritzsche는 대대적인 개조를 통해 르네상스악기의 작은 건반범위를 4개의 건반에 4옥타브로 확장하였다. 개축작업은 그의 아들 Hans Christoph Fritzsche에 의해 1655년에 행하여졌다.

 

1693년 Schnitger를 통한 오르간의 확장

  이 옛 오르간에서 Arp Schnitger는 25개의 입술형파이프음색과 떨판형파이프음색을 취했다. 그 중에는 초창기 원래 오르간(1516)에서 온 음색들도 있었다. 그 밖의 파이프는 Schnitger가 스스로 제작하였다. Schnitger는 오르간을 4개의 손 건반과 60개 음색으로 확장하였다. 그는 St. Katharinen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인 Johann Adam Reincken의 충고에 반하여 페달에 Prinzipal 32'와 Posaune 32'를 배치하였다.

오르간제작을 위한 경비는 29.108 Mark에 달했다. 오르간은 Hauptwerk, Oberwerk, Rückpositiv, Brustwerk 그리고 Pedalwerk를 가지고 있다. Schnitger의 St. Jacobi교회의 오르간은 Hamburger Prospekt와 같은 개념의 종류로 여겨진다.

이 프로스펙트의 특징은 페달 탑과 중간부분의 각진 탑의 대칭적인 구성이다. Hauptwerk의 중간 탑을 위해 파이프 면을 중단하였다.

여러 전기 작가의 보고에 의하면 Johann Sebastian Bach는 St. Jacobi교회에 오르가니스트 자리를 얻으려고 응모하였다. 그렇지만 Bach 대신 Johann Joachim Heitmann이 자리를 얻었다. 왜냐하면 그는 유명해진 Bach에 비해 큰 돈(4,000 Mark)을 교회에 납부하고 그 결과 담임목사의 딸과 결혼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Jaco 8.png

1721년 Specification

18 - 19세기의 음색변경

  1722년 오르간은 Diedrich Richborn에 의해 정비되었는데 그는 음색의 변경을 시도하였다. Johann Jakob Lehnert 역시 1761년 음색을 미미하게 변경하였다. 1774 - 1775년 Johann Paul Geycke는 연주대를 새롭게 제작하였다. 계속된 음색변경은 1790년 Johann Daniel Kahl을 통해서 1836년과 1846년 Johann Gottlieb Wolfsteller에 의해 시도 되었다. 1866년 새로운 바람운송관과 바람의 압력을 일정하게 하는 풀무들을 장착하였다. 연이은 음색변경과 Brustwerk에 추가적인 공기압력식 바람공급대는 1890년 Marcussen에 의해 시행되었다.

 

20세기의 보수작업

오르간의 본질적인 소리에 대한 첫 번째 중대한 손질은 1차 세계대전 시 군대의 금속수집 행정으로 프로스펙트 파이프들을 공출했을 때인 1917년에 이루어졌다. Hans Henny Jahn은 Gottlieb Harms과 함께 이 악기의 가치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이 절망적으로 쇠퇴한 악기의 수리를 위해 진력하였다. 그는 연주회(Ugrino-Konzert)의 실행과 더불어 이 계획을 위해 재정적인 수단을 모두 소진하였다. 그는 오르간제작사 Kemper(Luebeck)와 밀접하게 일을 하였다. 당시 오르가니스트로 재직 중이었던 Carl Mehrckens와 오르간전문가인 Theodor Cortum을 통해 1920년대 말 오르간은 당시의 대세인 공기압력식으로 보호되어졌다.

  Hans Henny Jahnn은 1925년 뤼벡(Luebeck)의 오르간회의에 오르간제작의 개혁에 대한 그의 생각에 대한 원칙을 알렸다. 이것은 후에 다른 오르간전문가들에 의해 소위 말하는 오르간복고운동의 단초를 야기 시켰다. 이 원칙의 근본적인 요소는 오르간제작에서 옛 기계적인 액션 그리고 바로크의 이상적인 소리에 대한 회고였다.

  연합군의 폭격으로 뤼벡 성당(Luebecker Dom)과 St. Katharinen에 있는 대형 자매악기의 파괴 후 파이프들과 바람공급대 그리고 케이스 장식들이 1943년 교회 탑 하부의 대형 창고에 보관되었다. 창고보관을 통하여 옛 파이프들의 85%를 보존하였다. 폭격으로부터 문화재를 보호하는 것은 당시 위험한 모험이었다. 나치의 권력자 앞에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오르간케이스와 연주대는 교회에 보관되어 있었고 화재로 전소되었다.

  2차 세계대전 후 오르간은 먼저 파괴되지 않는 교회의 남쪽 부분에 임시로 보관되었다. 교회의 주 공간 보수 후 오르간은 새로운 연주대를 포함한 새로운 케이스에 설치되어 1961년 1월 29일 봉헌하였다.

이 오르간의 재건축에 쉬니트거의 제작방식개념을 현저히 벗어나고 그럼으로 옛 소리의 근본은 당시의 가능한 그리고 바람직한 표준(규격)을 참작하지 못한 개념의 이용 하에 진행되었다.

여기에 속하는 예는 오르간제작자 Kemper의 소견에 반하여 교회임원회는 Schnitger에 의해 설계된 손 건반 첫 옥타브의 짧은 옥타브의 부족한 건반들을 보충하도록 결정하였다. 이를 위해 바람공급대들을 확장하였고 파이프들을 바람공급대 위에 순서에 따라 변경하여 배치하였다. 이것은 전체 바람공급을 뒤섞어 난잡하게 하였다. 그 결과 연이은 문제가 다음과 같이 일어났다. 파이프의 가름대(Kern)를 분리하고 파이프 입(Aufschnitt)을 짧게 하여 가름대 틈을 변경해야 했다. 당시에는 전쟁 전 오르간의 고압력은 쉬니트거의 개념에 원인을 돌릴 수 없다는 옳지 않은 가정에 근거를 두기도 했다. 그 결과 바람의 압력은 분명히 낮추어져 일부분의 파이프들은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게 되었다. 연이은 문제는 몇몇의 고음부의 파이프들은 반음에서 온음까지 높게 바람공급대에 세웠고 파이프들은 부분적으로 현저히 짧아졌다. 이 사실은 파이프에 원래의 음표기가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우연히 발견되었다.

유르겐 아렌트는 자신의 공장에서 St. Jacobi의 Schnitger오르간에 대한 부족함을 항상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Johann Jakob Lehnert를 통해 예외적으로 변경된 부분을 1693년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 일이 Ahrend에게 1986년 주어졌다. 그는 이미 Huss와 Schnitger의 다른 오르간들의 수리를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상태였다.

Jaco 9.png

1993년 이후 Specification

1985년부터 1987년 까지 그로닝(Groning)의 오르간 수출업자인 Cornelius H. Edskes에 의해 오르간 복원작업의 확실한 기초를 세우기 위해 대략 30여개의 특징들이 기록되었다. 결과는 60,000개보다 많은 기록들이 모였다. 연주대는 오늘날 뤼벡(Luebeck)의 St. Annen 박물관에 있는 Schnitger의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복원 전 교회의 천장에서 원래의 쉬니트거 음색이름 표시판을 발견했다는 것은 특히 의미가 있다. 커다란 납으로 된 Posaune 32'의 울림통은 구조상 자신의 무게를 견딜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울림통은 점차 찌그러졌다. 울림통들은 세심하게 다시 펴서 구리로 된 지지대로 보강하였다. 32‘의 Prinzipal 파이프들을 포함한 프로스펙트 파이프들은 새롭게 주물을 하여 쉬니트거의 원래 것에 해당하게 둥근 입으로 구부려 만들었다. 이를 위해 Juergen Ahrend는 자신의 공장천장을 뜯어야했다. 프로스펙트 파이프 금속의 함금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문제에 봉착했다. 옛 내부의 파이프들에서 옛 프로스펙트 파이프들의 여분일 것이라 추측되는 파이프조각들을 발견하였다. 이들 파이프조각들은 분석한 결과 이들은 거의 순수한 납으로 된 함금임을 알게 되었다. 이들 조각들은 새 프로스펙트의 주물에 사용되었다.

  2차 세계대전 후 원래의 바람공급대의 파이프보드(pipe board, Pfeiffenstock)들을 분리하여 변경된 규칙에 따라 다시 조립하였다. 이 작업을 한 제작자는 원래의 역사적 본질을 가능한 보존하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파이프의 스케일과 바람공급대의 크기에 따라 원래의 바람압력을 다시 만들어냈다.

  독일 연방우체국에서 1989년에 발행된 우표에는 “Hamburg St. Jacobi 주교좌성당의 300년 된 Arp-Schnitger 오르간, 마침내 조각 작품이 복구되었고 결손 된 부분이 채워졌다. 100 평방미터의 금박 판은 도금되었다. 여기에는 막음 판, Rückpositiv의 천사의 형상, Hauptwerk의 아기천사상과 다윗의 상도 포함된다. 총 비용은 오백만 마르크에 달했다”고 적었다.

  쉬니트거의 파이프들로 된 새 오르간을 의심할 여지없이 보게 되었다. 복원 후의 오르간소리가 복원 전의 소리와 크게 일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복원작업계약 후 수 많은 인정들이 있었지만 격렬한 논쟁도 역시 불러일으켰다. 몇몇의 비판자의 견해는 너무 강하고 날카로운 보이싱에 있었다. 1693년도로의 환원은 어쨌든 300년간 복합적인 오르간 건축역사의 발전이 바르지 않다고 하는 판단이 실행되어야 했다.

조율법의 선택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도 있었다.

Jaco 3.png
Jaco 6.png
Jaco 4.pn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