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오르간(Hydraulis)
역사
물 오르간은 고대에 널리 퍼졌던 오르간이다. 이 악기는 기원전 3세기경(BC 246)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의 크테지비오스(Ktesibios)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이 악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하여 AD 4 세기경에는 전 로마지역에 펴졌다. 당시 부유층에서 신분에 맞는 품위 있는 가정음악을 위해 오르간을 소유했다. 오르간은 노래를 반주했으며 검투장의 검투사경기와 극장에 사용되었다. 당시 몇몇 황제들(예를 들어 Nero)은 스스로 이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였다. 기원 후 3세기경 이 복잡한 물의 작용으로 인한 작동장치는 점차 풀무의 작동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물 오르간이라는 뜻의 Hydraulis라는 이름은 중세기 까지 사용되었다.
오르간에 대한 옛 문헌
고대로부터 많은 물오르간에 대한 기술적인 서술이 전해져 내려왔다. Heron von Alexandria는 자신의 저서 "Pneymatika"에서 음색과 펌프장치를 가지고 있는 단순한 형태의 오르간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1세기 후반에 살았던 Iulius Pollux는 풀무를 가진 소형오르간과 물을 이용한 대형오르간을 구분하였다. 매우 정확한 Hydraulis에 관한 기록은 로마의 건축가인 Vitruv의 "de architectura"에서 발경할 수 있다. 비록 이 기록이 Heron의 그것보다 먼저 이지만 Vitruv는 더 발전된 두 개의 펌프를 가지고 8개의 음색을 가진 악기에 관하여 기술하였다.
(Heron von Alexandria는 1세기의 수학자이며 기술자이다. 그는 공기, 열, 물을 이용하여 자동장치에 관한 지식과 기술에 뛰어났다)
오르간에 관한 고대의 그림들
고대 오르간에 대한 그림들은 많이 있다. 이 그림들은 고대의 기술들과 같이 다양한 오르간의 크기나 타입에
대하여 나타내고 있다. 받침위에 제단모양의 상자를 세우고 양 옆에 바람을 일으키는 펌프가 장치되어있다. 상자위엔 파이프열, 음색선택장치, 건반 그리고 파이프의 고정을위한 지지대등으로 구성된 오르간이 있다. 오르가니스 역시 함께 그려졌다. 그러나 바람의 공급을 작동하는 칼칸트(Kalkant)는 매우 드물게 그려졌다. 이 악기는 명백히 규칙적으로 검투장에 금관악기주자와 함께 투입되었다.
오르간의 발견
1931년 오늘날의 헝가리 부다페스트(Budapest)지역인 Aquincum에서 소형의 로마 오르간이 발견되었다. 이 오르간의 봉헌기념 명찰의 기록으로 이 악기는 AD 228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악기는 이미 고대에 화재로 파괴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금속으로 된 부분은 상대적으로 잘 보존되었다. 음색장치와 파이프들의 복구가 가능하였다.
바람공급대, 음색선택장치 그리고 파이프들로 구성된 이 Aquincum오르간은 약 60 cm의 높이와 30 cm의 넓이 그리고 12 cm의 두께를 가지고 있다. 이 오르간은 하나의 열린식 파이프로 된 음색과 3개의 막힌식파이프로 된 음색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음색은 개별적으로 선택되어 질 수 있다. 음색의 음역은 13개로 52개의 파이프로 구성되어있다.건반은 이미 나무로 제작되었다. 음색선택장치 및 슬라이드, 파이프보드 그리고 파이프들은 금속으로 매우 세밀하게 제작되었다. 이 Aquincum의 오르간은 유감스럽게도 바람공급장치는 보존되어 있지 않았다. 그럼으로 이 오르간이 물 오르간인지 아니면 그 당시 이미 나타난 풀무오르간인지 정확히 말 할 수 없다. 오르간의 크기와 몇몇의 잔해들로 미루어 아마 풀무오르간일 가능성이 크다.이 외에도 Aventicum(오늘날 스위스의 Avenches)과 Dion(그리스)에서 고대오르간이 발견되었다.
그리스 Dion에서 발견된 오르간의
잔해와 당시의 제작기술에 의하여
복원된 Hydraulis
헝가리 아퀸쿰(Aquincum)에서
발견된 오르간잔해를 복원한
Hydraulis